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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호 우리밀영농조합법인 ‘밀벗’ 대표
국산밀산업협회   2013-05-20 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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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밀에 밀리고 대기업에 치이고 우리밀 24년 외길
최성호 우리밀영농조합법인 ‘밀벗’ 대표


매년 이맘때면 밀 수확이 시작되지만 우리밀을 생산하는 농가와 중소 제분업체 운영자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수입밀로 몸집을 키운 대형 제분회사들이 우리밀 시장에 진입해 소형 우리밀 가공업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한편 우리밀 제품을 납품받는 대형마트의 폭리 구조로 인해 농가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4년 동안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전개해온 최성호(71) 우리밀영농조합법인 ‘밀벗’ 대표는 시장 여건이 녹록지 않다고 토로했다. 농민운동 1세대인 최 대표는 우리밀 업계에선 ‘선구자’로 통할 만큼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지난 5월 5일 전남 구례군 광의면 구만리에 있는 밀벗 공장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해온 결과 0%였던 우리밀 생산이 전체 밀 시장의 2%까지 성장했다. 우리밀 시장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나니까, 수입밀로 덩치를 키운 대기업들이 우리밀 시장에 진입해 영세업체의 존립을 위협한다. 우리밀이 수입밀에 비해 비싸고 일반 소비자들이 잘 사지 않아 재고가 쌓이면 대형 수입밀 업체들이 덤핑으로 우리밀 제품을 시장에 뿌릴 때도 있다. 그럼 우리 같은 중소업체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국산밀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체 밀가루의 양은 200만t 규모에 조금 못 미친다. 이 중 우리밀은 약 4만t에 불과해 전체 밀가루 시장의 2% 수준이다. 98%의 밀가루는 수입밀을 원료로 한다. 단 우리밀은 수입밀에 비해 가격이 3배가량 높기 때문에 매출 규모로 보면 전체의 6% 선까지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밀 대부분은 첨단 제분시설을 갖춘 대한제분, CJ제일제당, 동아원(동아제분) 등 대형 수입밀 업체가 수매를 대행한다. 이 업체들이 밀가루로 가공해 시장에 제공한다. 최 대표가 있는 우리밀영농법인은 우리밀 전체 생산량의 10%(4000t) 정도를 수매해 가공하고 있다.

“우리밀을 수매하고 분쇄한 뒤 제분까지 하려면 회사 규모가 꽤 커야 한다. 대형 제분사를 제외하면 우리 법인이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그렇다 보니 우리밀의 상당량이 수입밀 업체로 들어가 제분이 되고 시장에 납품된다. 밀가루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호시탐탐 우리밀 시장을 노리고 있던 대기업들이 손쉽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다.”

최 대표는 1991년 고향인 전남 구례에 우리밀영농조합법인을 세웠다. 당시에는 우리밀 생산이 0%일 때다. 밀가루는 한국전쟁 이후 대표적 원조 품목으로 국내에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를 거치면서 수입밀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당시 대부분의 수입밀 업체들은 오늘날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대로 국내 밀산업은 붕괴됐다. 정부는 1984년 결국 밀수매제도마저 폐지했다. 저가의 수입 밀가루와 경쟁할 수 없게 되자 농가들이 밀 생산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농민운동을 하던 최 대표가 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밀을 살리는 게 대정부 투쟁방식의 농민운동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최 대표는 곡물파동으로 식량난이 발생할 것을 가정하고 최소 30만가마(1가마 40㎏) 정도의 우리밀 종자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밀살리기 운동은 종자 자체를 구할 수 없어 시작 단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우리밀살리기를 하려고 막상 뛰어들었는데, 종자를 구할 길이 막막했다. 전국을 다니며 어렵게 밀 한 가마니를 마련했다. 그걸 전남, 경남 지역 농가 두 곳에 14㎏씩 나눠주고 나머지는 내가 파종을 했다. 우리밀 농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현재 4만t까지 우리밀 생산이 늘어난 건 우리밀 운동 초기 시각에서 볼 때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밀을 뿌린 첫해 수확량이 제법 나왔다. 최 대표는 이걸 다시 다른 농가에 제공하고 점차 밀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공과 판로개척이 문제였다. 수입밀에 비해 비싼 우리밀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예컨대 땅 3.3㎡(1평)에 오이를 심으면 5만원의 농가수입이 가능하지만 밀은 500원도 벌기 어려운 구조였다. 더욱이 1984년 밀 수매가 폐지되고 2007년까지 23년간 농림부 정책에서 밀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농림부에 ‘밀’이 돌아온 건 2008년 ‘제2의 녹색혁명’ 정책이 발표되면서부터다.

“300가마 이상을 생산하는 농가들이 생겨났는데, 이걸 처리할 시설이 없었다. 생산만 하면 뭐하나. 돈을 벌 수 있어야지. 광의면(구례군)사무소에 공문을 보내서 부락 청년들과 같이 우리밀을 생산할 수 있도록 법인을 만들 테니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다. 결국 전남도청의 지원을 끌어냈다. 광의면 특품사업단 우리밀가공공장영농법인은 그렇게 출발했다.”

최 대표를 비롯해 우리밀영농법인의 직원과 출자 농가들은 10년 동안 봉급과 배당금을 포기했다. 우리밀 생산 농가를 늘리고 생산량이 적정 수준에 도달한 뒤에는 밀 분쇄 및 제분 공장을 지었다. 여기서 밀가루를 생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우리밀을 원료로 한 칼국수, 라면, 건빵, 우리밀차(茶) 등은 시장에서 제법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밀벗’ 브랜드로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은 지 10년 만인 2001년에는 영업흑자를 달성했다.

“앞으로 대형 수입밀 업체와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차별화된 아이디어 상품을 만드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시장경제에서 무작정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가 바라는 건 대기업도 우리밀 시장을 확대하는 데 함께 노력하는 거다. 대기업은 우리밀이 죽어갈 때 수입밀로 많은 돈을 벌었다. 단순히 돈을 벌겠다는 목적만 갖고 우리밀 시장에 뛰어드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밀 생산량과 농가의 수입은 최근 들어 조금씩 줄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밀은 농가와 가공, 유통업체들이 협의를 통해 생산량을 조정하는 계약재배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우리밀 생산량은 2007년 7000t에서 2011년 4만3000t까지 증가하다가 지난해 3만7000t으로 줄었다. 올해는 약 3만5000t으로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최 대표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마진율이 너무 높아 상대적으로 농가에 박탈감을 준다”고도 했다.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 1㎏의 공장도가격은 1900원이다. 그런데 막상 대형마트에 진열된 가격을 보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소매가가 3500원으로 적혀 있는 곳도 있다. 농가에서 유통까지 모든 비용을 1900원에 맞춰 납품하는데, 마트는 1600원을 마진으로 챙기는 것이다. 제왕적 유통업체들의 폭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최 대표는 “우리밀영농법인의 올해 매출을 60억원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고 했다. 이 법인의 공장은 전남·북과 경남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리밀의 대부분을 수매하고 있다. 연간 약 4000t(10만가마)을 수매하는 데 4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이제 직원들 4대보험도 들고 월급도 제대로 줄 정도가 됐다. 그렇다고 큰돈을 버는 건 아니다.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우리밀을 지켜냈다는 데 보람을 느끼며 산다. 몇 년 뒤에는 후배들에게 공장 경영도 물려줄 생각이다.”

출처 :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57100017&ctcd=C07

김진원 부안우리밀영농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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