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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일렁이는 물결 좀 보소…안전하고 건강한 우리밀이오
국산밀산업협회   2017-05-22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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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일렁이는 물결 좀 보소…안전하고 건강한 우리밀이오

 

 

값싼 외국산에 밀려 외면 자급률 1%대 불과

 

온갖 풍파 겪고도 명맥 유지 늦가을 파종해 봄에 수확 농약 거의 안 쳐 안전성 높아

 

“제철에,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먹는 건강한 우리 먹거리죠”

 

가을 벼를 벤 자리에 씨를 뿌리고 겨우내 기다려 봄이면 또다시 맛보는 수확의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그뿐이랴. 밀로 만든 국수며 수제비·전은 맛난 음식이요, 밀밭에서 한줌 슬쩍해 모닥불에 구워먹는 밀사리는 더할 나위 없는 간식거리였다.

 

그랬던 우리밀이 남의 나라 값싼 밀에 밀려 외면받는 신세가 돼버린 지금. 사정이 영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땅에 남은 밀은 여전히 건강한 낱알을 맺고 있다.

 올봄에도 남녘의 밀밭은 누런 옷을 갈아입을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밀’이 걸어온 길

 

 밀이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린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미림리의 유적에서 발견된 한국 최초의 밀은 무려 기원전 200~100년 무렵의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경주의 반월성지, 충남 부여 부소산의 백제 군량창고 등 유적에서도 밀이 발견됐으니 삼국시대에 밀농사를 지었단 얘기다.

 

 한반도 내에서 밀은 생산량이 많지 않은 귀한 음식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궁중에서, 조선시대에는 상류층 사람들이 잔치음식이나 별식으로만 먹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가끔 먹던 밀이 주식의 자리에 올라선 때가 있었는데, 여기엔 민족의 아픔이 묻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쌀과 콩을 자국으로 강제 반출하면서 우리나라의 식량 부족분을 보리와 밀로 채우고자 밀 생산을 늘린 것이다.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이 끝난 후엔 미국의 입김이 불어닥쳤다. 이름하여 미국의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PL480)’에 따라 무상원조라는 명분으로 미국산 밀이 국내로 쏟아졌다. 이로써 미국은 과잉생산된 밀을 처리하는 동시에 한국시장을 개척할 기반을 마련했고, 우리밀산업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누런 우리밀 가루만 먹던 사람들은 뽀얀 밀가루의 보드라운 감촉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다 귀한 쌀을 아끼고 밀을 많이 먹자는 ‘분식장려정책’까지 시행되면서 1960~1970년대 미국산 밀의 소비는 빠르게 증가했다. 국민 입맛이 미국산 밀 맛에 길들여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밀농가는 꿋꿋이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어 밀을 길렀다. 덕분에 1970년 밀 자급률은 15%를 웃돌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공든탑이 무너져내렸다. 1982년 밀 수입 자유화와 1984년 정부의 밀 수매제도 폐지가 연달아 우리밀농가를 후려친 것이다. 보리 수요에 대비해 밀 지배지를 보리로 대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수매제도 폐지의 이유였다. 값싼 외국산 밀에 밀리고 판로까지 막히면서 국산 밀농가는 급격히 감소했다. 1990년 밀 자급률은 무려 0.05%로 쪼그라들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우리밀을 다시 살린 건 1989년에 시작된 ‘우리밀살리기운동’이었다. 경남 고성 두호마을 등의 농가들은 자발적으로 밀을 심었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설립되면서 수매가 이뤄졌다. 밀산업에 한줄기 빛이 드는 듯했다.

 

 그러나 민간이 막대한 수매자금을 감당하는 데는 무리가 뒤따랐다. 이미 수입밀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입맛을 돌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였다. 결국 수매자금을 차입금으로 조달하게 되면서 고금리에 시달리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까지 겹쳐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는 부도를 맞게 된다. 이후 생산·수매업무는 농협중앙회로 이관되었다가 지금은 (사)국산밀산업협회의 회원사와 일부 지역농협이 수매를 맡고 있다. 국산밀산업협회는 2010년 생산자조직과 유통·가공업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로, 우리밀 수급과 가격조절에 힘쓰고 있다.

 

 왜 ‘우리밀’이어야 하는가

 

 온갖 풍파를 겪고도 우리밀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안전성’이란 담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호주·캐나다 등 수출국의 일부 밀은 봄에 파종해 가을에 수확하는 탓에 병해충이 생기기 쉽다. 반면 우리밀은 11월쯤 심은 후 겨울을 보내고 6월 초에 거두기 때문에 병해충 발생이 적다. 그만큼 농약 뿌릴 일이 많지 않다. 또 ‘생산자→산지저장 시설→제분공장→가공공장→소비자’와 같이 유통과정이 길지 않아 방부제를 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외국산 밀은 ‘생산자→산지농가 단위 저장소 →트럭 이동→산지 집하시설→트럭·기차·선박 등 이동→수출항 저장시설→해양운송→수입항 저장시설→제분공장→가공공장→소비자’라는 긴 유통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르기 때문에 약품처리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늘 제기되곤 한다. 밀의 부패를 막고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해 수확 후에 농약처리를 하는 ‘포스트 하비스트(post-harvest)’ 등이 주요 논란거리다.

 

 “방부제를 일절 넣지 않은 우리밀 가루는 포장지에 바늘구멍 하나만 뚫어도 금방 변질돼버려요. 그런데 수입밀가루는 하루고 이틀이고 며칠을 놔둬도 안 상해요. 그런 게 몸속에 들어가도 정말 괜찮을까요?”

 

 경남 사천에서 20년째 우리밀 농사를 짓고 있는 박성한 사천시우리밀작목회장은 수입 밀이 주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밀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9만9173㎡(3만평) 규모의 대지에서 <조경밀>과 <앉은뱅이밀>을 재배하는 박 회장은 연 40t의 밀을 생산해 일부는 계약재배로, 일부는 밀가루·밀쌀 등으로 가공한 후 인터넷 사이트에서 직접 판매한다. 온라인 판매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창구다. 박 회장이 듣는 소비지의 이야기도 그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옛날의 구수한 맛이 그리워서 우리밀을 주문하는 고객도 많지만, 특히 아이가 있는 주부들이 우리밀을 많이 찾아요. 아이에겐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만 먹이고 싶다고요. ”

 

 우리밀이 단순히 안전성만 앞서는 건 아니다. 우리밀에는 수입밀에 없는 복합다당류 단백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 강원대 한국영양과학연구소 최면 교수팀은 이 성분으로 인해 우리밀이 수입밀보다 인체 면역기능이 높고 항산화작용을 통한 노화억제 역할도 한다고 이미 오래전에 밝힌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수입밀의 입맛에 익숙해진 소비자를 위해 우리밀도 점차 변화를 꾀하고 있다. 우리밀은 외국산보다 글루텐 함량이 낮아 중력분만 생산할 수 있었다. 이에 글루텐을 분리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글루텐 성분을 혼합해 강력분과 박력분 생산까지 가능하게 됐다. 또 좀더 부드러운 우리밀 가루를 만들기 위해 70%대의 제분율을 65%로 조정하는 농가도 생겨났다. 고집스럽게 옛것만 고수하지 않고 밀을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봤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식을 먹을 땐 세가지 조건을 갖춘 것을 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제철에, 가까운 곳에서 나는 것을, 가능한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밀은 그중 어느 하나에도 어긋나지 않는 먹거리다. 그러나 밀 자급률은 여전히 1%대에 머물러 있다. 나라에선 수년째 자급률 개선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거기까지 닿기엔 아직 요원해보인다. 이땅에서 맘 편히 우리밀을 일구고 다함께 나누는 날이 다시 오긴 올까.

 

 

출처: 농민신문 (2017.05.22)

사천=하지혜 기자, 사진=김덕영 기자
MBC경남 뉴스데스크(0529)-사라지는 우리밀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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