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곡물가격 상승 때문에 물가 전체가 오르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조짐이 보이자, 정부가 농산물가격 안정기금을 풀어 농산물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기금을 투입해 채소는 계약재배 물량을 늘리고 콩, 팥 등은 만약에 대비해 미리 구입해 비축해 놓겠다는 복안이다.
15일 기획재정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올 하반기에 농산물가격 안정기금에서 1474억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농안기금 지출 규모는 당초 2조2022억원에서 2조3496억원으로 6.7% 늘어난다. 농안기금이란 농산물 수요 공급 조절과 가격 안정, 유통구조 개선 등을 위해 1966년 설립한 기금이다. 정부는 이번 기금을 △양념 채소 계약 재배 확대 △인삼ㆍ약용작물 계약 재배 확대 △파프리카 등 수출 농작물 원료구매 지원 등에 사용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배추 등 채소류 값이 들썩일 것을 염려하고 있다. 재정부는 "올 생산 감소로 가격이 오른 양파, 마늘에 대해서는 계약 재배 물량을 늘려 내년도 생산 시기까지 유통물량을 확보할 예정"이라며 "날씨에 민감한 배추, 무 등 김장 재료에 대해서도 공급량을 충분히 확보하겠다"고 설명했다.
국내 생산량만으로 수요를 맞추지 못하는 콩과 팥은 수입해 비축한다. 콩은 3만1717ｔ, 팥은 5000ｔ 각각 추가 수입할 예정이다.
또 인삼 약용 작물은 재배 단계부터 구매자인 농협과 계약을 맺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기로 했다. 농식품 수출에 필요한 원료 구매 자금도 지원한다. 대상은 파프리카 감귤 등이다. 재정부는 "이달 중 수요자를 파악해 농협과 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까닭은 농산물 시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시장에서 옥수수값은 부셸(25.4㎏)당 8달러로 2007~2008년 식량위기 당시 7달러에 비해 상승한 상태고, 콩(대두)값 역시 부셸당 16달러로 2008년 15달러대를 훌쩍 넘어섰다.
이런 여파는 향후 4~7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 곡물가격 급등으로 향후 밀가루는 올해 2분기보다 27.5%, 옥수수가루는 13.9%, 식물성 유지는 10.6%, 사료는 8.8% 각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밀가루와 옥수수는 빵, 국수, 맥주 등 식탁물가와 외식물가에도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곡물이다. 또 사료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 돼지고기, 쇠고기 가격마저 연쇄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번 애그플레이션이 2007~2008년, 2010~2011년 곡물 파동에 못지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07~2008년에는 투기자금 유입, 주요 생산국 수출 제한, 옥수수를 재료로 한 바이오 연료인 에탄올 생산 증대 등에 힘입어 곡물 가격이 상승한 바 있고, 2010~2011년에는 러시아 가뭄 등으로 전 세계 곡물 공급량이 3100만ｔ가량 부족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내년까지 곡물 부족량이 4000만t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또 글로벌 과잉 유동성으로 투기자금이 몰리고 있는 점도 애그플레이션 불안 요인이다.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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